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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의 운명은 가혹하고 고달프다

니콩니콩수 2017. 3. 16.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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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의 운명은 가혹하고 고달프다. 구두 주인이 프랑스 루이 14세, 혹은 백악관을 호령하는 남자, 혹은 세계 10대 갑부라 해도 어쩔 수 없다. 페르시안 카펫이 깔린 침실에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만 잠깐 신는다는, 금실로 이니셜 로고가 수놓인 벨벳 슬립온이라면 아스팔트 바닥에 들러붙은 껌 덩어리를 대면할 일이야 없겠지만, 고귀한 주인 어른의 불결한 발바닥을 피할 순 없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청결하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남자도, 하루 두 번씩 머리를 감는다는 남자도 발끝 사정에 관해선 강 건너 불 구경보다 무관심하다. 비록 1년에 딱 두 번 레드카펫을 밟을 때만 세상 구경을 하는 슈퍼스타의 에나멜 구두도 관리는 필요하다. 마트에서 파는 빨랫대에도 구두 전용 건조 틀이 달려 나오는 시대에, 구두에 필요한 관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구두닦이들 사이에서 전해져 오는 방식이다. 숙련된 기술이 없어도 누구든 할 수 있고 약간의 관심과 시간이면 충분하다.


구두를 신었을 땐 어디든 성큼성큼 걸으면 그만이다. 신고 있는 구두를 상전 모시듯 종종걸음으로 걷다간 한 시간도 안 돼 지쳐버릴 테니까. 그러니까 구두에 대한 예우는 집으로 돌아와 구두를 벗으면서 시작된다. 아침저녁 세수하듯이 구두를 닦는 건 아니지만, 거의 매일 신는 구두라면 며칠에 한 번씩 부드러운 천으로 먼지를 털어주고, 그보다 가끔씩 구두 전용 크림으로 닦아준다. 크림은 얼굴에 바르는 영양 에센스처럼 가죽을 부드럽게 하면서 때를 없애고 자연스러운 광택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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